꽃길이 이끄는 은유의 유토피아와 타블로 비방(tableau vivant)
김성호(미술평론가)
강혜정의 회화에는 꽃들이 화사하게 개화한 자연의 숲속을 우아하게 거니는 백마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때로는 한 필 혹은 한 쌍의 말이다. 그(들)은 숲속을 유유히 거닐고 있다. 때로는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듯 발길질을 힘차게 치고 있거나, 때로는 뜀박질을 멈추고 숨 고르기를 하기 위해 정지하려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루를 마치고 숲속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거나 꽃밭에서 자신의 짝을 향한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있기도 하다.
말들이 노니는 배경은 싱그러운 풀잎들이 가득하고 화사한 꽃들이 만개한 꽃 무더기 속 풍경이다. 그 풍경은 화사함을 넘어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그 속에서 관객은 어린 시절 읽었던 설화나 신화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은유의 세계로 가득한 그녀의 낙원의 세계로 점차 잠입해 간다. 화가 강혜정의 이번 개인전 주제인 ‘꽃길만 걷자’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현재까지도 지속 중이다.
I. 백마를 품은 타블로 비방 - 포즈의 미장센
화폭에 정겹게 자리한 백마 한 쌍의 유려하고도 역동적인 움직임은 정지의 상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마치 그들이 관객을 위해서 잠시 포즈를 멈추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화가 강혜정은 말들의 움직임도, 꽃들의 떨어짐도, 풀잎의 떨림도, 바람도 잠시 정지시키고 그녀가 만든 자연의 낙원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화가 강혜정은 이처럼 ‘움직임의 일시 정지’를 통해 자신의 회화를 무언(無言)의 고요(silence)와 부동(不動)의 쉼(pause)의 상태로 만들어 관객을 위한 ‘타블로 비방(Tableau vivant)’의 세계를 구현한다. 활인화(活人畵) 또는 ‘살아있는 그림’으로 번역되는 불어 ‘타블로 비방’이란 ‘사람이 명화나 유명한 역사적 장면 등을 정지된 모습으로 연출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19세기 프랑스의 살롱이나 유럽의 연회 등에서 성인을 위한 놀이로 등장했고, 훗날 20세기에 연극이나 퍼포먼스 아트의 장르에서도 유행했는데, 동일하게 그 기원은 회화였다.
그런 면에서, 강혜정의 회화에서 등장하는 ‘타블로 비방’의 세계는 일견 ‘회화에 기원을 둔 회화’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그녀의 회화에는 유독 말을 자주 그렸던 20세기 초 청기사파의 화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의 말들의 형세가 그녀의 그림 안에서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내 안다. 그녀의 말들이 고전의 명화 속을 뚫고 신화의 세계를 관통해서 살아 나온 상상의 말들임을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회화에서 정지된 ‘말의 포즈’란 ‘화가 강혜정’과 ‘그녀가 그린 말들’이 서로 친밀하게 나누었던 대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들의 자태는 유려하고 역동적이며 때로는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고개를 내리고 천천히 걷고 있는 발의 동작을, 때로는 고개를 쳐들어 도약하려는 듯한 표정을, 때로는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과 동작을 잠시 멈추게 한 ‘정지의 잔영(殘影)’이 화사한 색면이 가득한 화면 전체에 잔잔하게 퍼진다. 보라! 하얀 말의 실루엣의 앞뒤 혹은 위아래를 말의 피부보다 밝은 하얀 색으로 탈색해 내거나 혹은 말의 피부색을 도드라지게 드러내도록 배경에 핑크 혹은 블루로 가득 채운 색의 향연을 말이다. 극명한 대비의 배경색들은 때로는 하얀 말의 선명한 피부를 서서히 물들이며 침투하거나 거꾸로 백마의 하얗고 투명한 피부색이 점차 짙은 색의 배경으로 침투해 들어가기도 한다. 하얀 말을 사이에 두고 극명한 명도와 채도로 대비의 미학을 펼치는 강혜정의 강렬한 미장센(mise en scène)이 그녀의 말들을 생기(生氣)의 존재로 되살려 낸 셈이다. 즉 채도 높은 선명한 색들의 향연과 대비의 미학을 통해서 ‘타블로 비방’ 속 존재를 생명체들로 되살려내는 것이다. 화면 속의 백마들을 잠시 정지되어 있을 뿐, 신화 속에 살아있는 신비의 생명체로 혹은 ‘타블로 비방 속에 살아있는 동물’, 즉 '애니멀 비방(Animal vivant)'으로 살려내는 것이다. 강혜정의 유려하고도 역동적인 말은 그렇게 태어났다.
II. 꽃길이 이끄는 은유의 유토피아 - 설화의 개입과 기억의 소환
그녀의 회화는 무언과 부동의 운동-이미지를 ‘포즈의 수사학(The rhetoric of the pose)’을 통해서 ‘타블로 비방’의 개념을 역으로 전유(專有, Appropriation)한다. 즉 ‘무언과 부동의 포즈(pose)’를 취함으로써 ‘쉼과 멈춤의 포즈(pause)’의 의미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자신의 회화 안에 타블로 비방의 조형(형식)뿐 아니라 특유의 조형의 정신(내용)을 아우른다. 그도 그럴 것이 ‘포즈’란 외형적 자세를 의미함과 동시에 ‘마음가짐’이라는 내면적 자세를 의미하듯이, 그녀의 ‘포즈의 수사학’ 역시 언어의 형식을 의미함과 동시에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관한 내용인가? 꽃길이라는 은유와 그것이 유토피아로 이끄는 신화와 설화의 내러티브이다. 오늘날 회자 되는 ‘꽃길’이란 말은 번민과 난관이 없는 긍정으로 가득 찬 ‘인생의 길’을 은유한다. 그것은 시름과 걱정을 떨치고 나서는 길이자, 고생과 고난을 물리치는 길이다. ‘꽃길’은 과거로부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의 희망을 상정하는 하나의 은유이다. 강혜정의 회화에서 그 은유는 자연을 거닐고 뛰노는 백마로 형상화된다. 특히 자작나무가 촘촘하게 공간을 차지한 자연을 배경으로 피어난 꽃들은 높은 채도와 명도로 화사한 색들을 품은 채, 백마를 감싸 안는다. 그녀의 회화 곳곳에는 그린 계열의 푸름과 핑크 계열의 화사함 그리고 옐로우 계열의 따스함이 한데 녹아있다. 이러한 장면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낙원(樂園), 낙토(樂土)로서의 이상향(理想鄕), 즉 유토피아(Utopia)처럼 인식된다.
그렇다. 우리의 현실은 기쁨과 즐거움만으로 가득할 수는 없다. 우리의 삶의 현실에는 번민과 고통, 슬픔이 가득하며 기쁨과 순간의 즐거움이 그 빽빽한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가끔 혹은 자주 숨을 쉴 따름이다. 오늘날 현실은 잃어버린 낙원을 늘 갈망하는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의 세계이자 오히려 디스토피아(dystopia)의 세계에 더 가깝다. 그러나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가 현실계에 존재하지 않는 극단의 세계임을 상기하자. 화가 강혜정은 극단의 두 세계 사이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그 사이를 오가는 삶을 거듭하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유토피아에 초대하며 관객을 위안하고자 한다. ‘실낙원’이라 여겨 온 ‘현재적 삶의 공간’ 속에서 낙원을 찾아가는 ‘복낙원(復樂園, Paradise Regained)’을 향한 여정에 관객을 초대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신화와 설화의 세계를 배태한다. 그곳은 만물 속에 잠자던 정령을 깨워 일으키고, 그들을 꿈틀거리게 하는 마법의 힘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그곳에는 백마 한 쌍을 중심으로 자연의 미물들이 엮어가는 미시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체험했던 차안(此岸)의 시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피안(彼岸)으로 상정되는 화사한 빛으로 가득한 유토피아의 세계이다. 그곳의 시공간은 세계 각지로부터 온 전승과 설화들과 상상력에 뿌린 내린 몽환시(夢幻時, dream time) 속에서 펼쳐지는 물활(物活)의 세계이다.
강혜정은 이러한 상상(想像)의 세계에 자신의 회상(回想)을 결합한다. 즉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추억을 낙원 세계에 소환하는 것이다. 언니의 손을 잡고 꽃밭을 노닐던 즐거웠던 한나절의 산책, 이웃 동네 사내아이들과 장난치며 나무를 타고 오르던 모험심 가득한 놀이, 나무에 그네를 매고 타던 노닐던 신났던 경험과 추억을 몽환 시 속에 소환해서 뒤섞는다. 그것은 과거의 설화와 신화가 자신의 그리웠던 어린 시절의 경험과 혼성되면서 창출되는 ‘아름다운 세계’이다.
III. 에필로그
화가 강혜경은 자신의 회화에 이러한 신비롭고 환상적인 가경(佳景)을 창출하기 위해서 수고스러운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회화를 위해 물감을 직접 제작한다. 자신의 낙원으로 관객들을 안내하기 위해서 그녀는 안정된 착색과 화사한 발색을 도모하는 물감 만들기를 실험하고 또 실험한다. 두터운 질료감과 광택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구현하기 위한 그녀의 다방면의 노력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은 이내 창작의 기쁨으로 치환된다.
강혜정은 다양한 조형 실험 또한 마다하지 않는다. ‘임파스토의 포지티브와 스크래치의 네거티브, 스트로크의 붓질과 보색의 화면 대비, 상징과 은유의 조합, 미장센과 서사의 개입’과 같은 다양한 조형 실험이 침투하는 그녀의 회화는 오늘도 각박한 현실을 살고 있는 관객을 자신의 낙원의 세계로 초대하고 위무한다. 유려하고 역동적인 말의 움직임을 정지의 화면으로 불러오는 타블로 비방의 환상계 그리고 설화와 자신의 유년 시절의 추억을 소환한 신비계로 관객을 초대하면서, 화가 강혜정은 관객을 향하여 나지막이 속삭인다. “이제는 꽃길만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