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적인 그러나 혼자인 인간 존재에 대하여
‘그리움은 바위다展’ / 이승훈(미술비평)
최영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의 형상을 그려낸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인간의 형상을 어느 순간 바위를 바라보는 가운데 ‘그리움’이라는 정서가 떠올랐고 그로부터 시작된 작업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이 미묘한 정서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사람이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 중 하나라는 것이다. 사람은 홀로 태어나 누구나 혼자이기에 외로울 수밖에 없고 그래서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되는 존재일 텐데 작가는 그러한 상황에서 사람의 내면 가운데 결핍된 것들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리움과 같은 정서, 즉 존재로서 다른 존재에 대한 필요와 결핍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상황에 대한 탐색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인간의 형상을 자세히 보면 그 인간 내부에 또 다른 수많은 인간의 형상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 존재 자체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결합에 의해 구축된 존재임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형상은 흑과 백, 두 가지로 구별되어 있으며 이 둘은 서로 기대거나 서로 껴안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백색과 흑색이라는 가장 극명한 명암의 대비를 보여주고 있기에 낮과 밤, 남과 여와 같은 음양의 구조로 읽혀지는데 작가는 이처럼 양극으로 표현된 인간 형태로부터 인간의 원초적 그리움을 그려내고자 하였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이성애적 그리움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의 여백 혹은 결핍에 대한 본질적 욕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작가가 그려낸 인간 내면의 ‘그리움’이라는 욕구는 가족, 친구, 더 나아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필요인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이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토대임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며 그렇기에 인간 사이의 유기적 관계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영미 작가의 작업에서 보이듯 마치 퍼즐처럼 서로 빈 자리를 메꿔주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은 한 인체의 형태가 있으므로 인해 생겨난 공간을 다른 인체의 형상이 채우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데, 그만큼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작가는 어느 순간 인간이 바위처럼 어딘가로부터 떨어져 나와 혼자된 것처럼 외롭고 고독한 존재임을 각성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외로움의 공간이 보이게 되었을 때, 그 공간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 역시 인간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면서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인간을, 그러나 유기체처럼 관계 맺고 연결되어 있는 인간을 그리게 되었던 것 같다. 최영미 작가의 작업에는 텅 빈 인간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인간 역시 그려져 있다. 이때 ‘어떤 인간의 형상을 보는가’ 혹은 ‘인간을 어떠한 형상으로 볼 것인가’라는 문제는 이제 관객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